영화 달콤한 인생 속에서 황정민이 이런 말을 한다. 


"몰랐어? 인생은 고통이야."


그래. 난 몰랐다.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운 것이 인생일 줄 몰랐다. 


약간은 감지하고 있었다. 주변 사람에게 말 한 대로, 앞으로 내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시기가 될 거라고.


저 말 속에는 그 시기만 잘 넘기면 그 다음에는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거라는 속뜻이 있었다.


근데 이제는 저 말을 좀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시기가 끝난다고 해도, 그 이후로도 어둡지 않을 것 같지는 않다. 


살면서 힘들다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기쁘다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나이고하와 성별을 불문하고. 

특히 나이가 많을 수록 더 힘들다는 소리를 자주 들은 것 같다. 나만해도 그렇다.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힘든 일은 더 생기고 기쁜 일은 덜 생겼다. 


그걸 곰곰히 생각해 보면 이런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지금도 힘들지만, 앞으로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굳이 삶을 이어나갈 이유가 있는가? 인간은 누구나 쾌를 추구하고 불쾌를 싫어한다. 앞으로 불쾌가 예정된 삶이라면, 

살아낼 가치가 있는 건가? 물론 매일이 고통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어느 날은 기쁜 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1년을 기준으로 잡았을 때, 기쁜 날보다 고통스러운 날이 훨씬, 압도적으로 많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선택할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1.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2. 고통이 예정되어 있는 삶을 살아낼 마음을 먹거나


1번은 매우 매력적이다. 고통의 강도만 다를 뿐, 앞으로 몇십년동안 이어질 고통을 미리 받는다고 생각하면 그리 억울할 것도 없다. 겪어보지 않아서 모른다고? 그래. 겪어보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나. 몇십년동안 이어질 고통을 미리 받는다고. 그리고 한 번 실행하면 돌이킬 수는 없다. 실행하고 나서는 고통이 수반될 것이고, 그 고통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참는 수밖에. 몇십년치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죽고 나면 남들의 슬픔 같은 건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주변이나 매체를 통해 인연의 끈이 닿아있는 사람의 죽음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1번은 이기적인 선택지이긴 하지만, 

말했다시피 죽고 나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그 이후로 힘든 일은 없다. 사후세계는 논외로 둔다. 


마음먹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 번 굳게 마음을 먹으면 실행 방법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주변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도 그 방법은 많다. 근데 뭐 이미 죽기로 한 이상 굳이 주변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것을 고려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보통의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등지고 삶을 그만두는데 일면식도 없는 타인에게 끼칠 피해같은 건 생각할 여유조차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사람들에게 하면 보통 이런 소리를 한다.


'죽기로 마음먹은 그 용기로 살아라'


이건 좀 지나친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삶을 이어나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서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살 용기가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할 것을 알면서도 죽는 것이다. 그 용기는 삶을 택하는 용기보다 과연 적다고 생각하나? 애초에 추상적인 감정이라 그 양을 따질 수는 없겠지만, 그건 저 문장도 마찬가지이다. 죽을 용기보다 살 용기가 더 적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근데 저따위 소리나 지껄이면 죽음을 감수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먹힐 것 같은가. 저 말을 하는 사람은 죽음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그래도 저 말은 꽤 울림을 주는 문장이라, 저 문장을 보거나 혹은 들음으로서 용기를 얻은 사람도 꽤 될 것이다. 앞으로의 삶에 조금의 희망이나마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저 문장 속에서 자신을 돌아봤을 것이다.


근데 2번은 어렵다. 1번에 비해 차원이 다를 정도로 어렵다. 지금 마음먹기도 힘들고, 앞으로 굳건하게 그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 이 삶이 고통 속에서도 불구하고 살아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기최면을 매일매일 걸면서. 내가 존경하는 분이 그랬다. 괜찮다,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을 끊임없이 되뇌이라고. 그 말을 반대로 생각하면, 끊임없이 되뇌이지 않고서는 살아내기 힘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 


나는 1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앞으로 고통받을 것이 분명한데, 굳이 살아내야 하나? 하지만 내가 살아갈 삶이 의미없다고도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기쁜 순간은 있었고, 앞으로도 찾아오긴 할 것이다. 주변에는 나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까지 절망스러운 상황은 아니다. 그냥 난 삶의 의지를 잃어버린 상태인 것 같다. 그러니 계속 1번을 생각하는 것이겠지. 

깊은 생각 끝에 정한, 현재 내 사망관은 이것이다.


'빠른 자연사'


이 얼마나 간단한가. 고통받을 시간을 줄이면서도(내가 줄이고 싶다 해서 줄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인간은 누구나 죽기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타인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이상,

 그 죽음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생각해보면 모순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자연사를 앞당길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빠른 자연사나 늦은 자연사나 다를 것이 없다. 어차피 갈 때 되면 간다.


즉 저 말은, 살아보겠다는 것이다. 2번을 택한 것이지. 앞으로도 1번의 유혹은 무수하게 찾아올 것이고, 삶은 계속 날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보겠다. 삶의 끝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삶을 살아내 볼 것이다.

살아내길 잘했다고. 그때 죽었으면 분명 후회했을 거라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


눈에서 물이 계속 떨어진다. 마음에 비가 오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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